자연재해 앞에 아무 손을 쓸 수 없는 나약 존재가 우리 아닌가 쉽습니다.
규모 7.8과 7.5의 두 차례 강진으로 인한 튀르키예(터키)와 시리아의 누적 사망자 수가 9일(현지시간) 2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사망자 수(1만8천500명)를 훌쩍 넘어선 수치입니다.
현지 전문가들은 최대 20만명의 시민이 여전히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인명 피해가 얼마나 클지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최대 20만명, 여전히 잔해에 갇혀"…튀르키예 "구조 인력 11만명 투입"
기적 같은 구조 소식 잇따라…시리아 반군 지역에도 첫 국제 구호 손길
56개국 파견 6천400명도 구조 작업…한국 긴급구호대, 활동 첫날 5명 구조
특히 터키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여한 형제국이나 다름 없는 곳입니다.
한국전쟁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지속된 전쟁으로, 북한(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음)과 남한(미국과 다른 서방 국가들의 지원을 받음)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1950년 유엔은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는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회원국에 군대를 파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UN의 회원국인 터키는 부름에 응답하기로 결정하고 공산주의와의 싸움을 돕기 위해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터키 여단으로도 알려진 터키군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습니다.
7,000명 이상의 군인. 그들은 고도로 훈련되고 장비가 잘 갖춰져 있었으며 전장에서의 용감함과 끈기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터키군은 다른 유엔군과 함께 싸웠으며 청천강 전투와 가평 전투를 포함하여 한국 전쟁의 많은 주요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터키군 한국 전쟁에서 여단의 활약은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감탄과 존경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임무에 대한 변함없는 헌신으로 찬사를 받았으며 분쟁의 궁극적인 결과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군사적 성과 외에도 터키 군인들은 현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구. 그들은 학교를 세우고, 의료 지원을 제공하고, 한국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타 인도주의적 노력에 참여했습니다.
터키군의 한국 전쟁 참전은 터키 역사상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국제적 의무에 대한 헌신과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 군인들은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그들의 유산은 터키 국민의 마음과 정신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이번 지진은 튀르키예 10개 주에 걸쳐 광범위한 피해를 낳았습니다.
건물 6천444채가 무너지면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극한의 상황에 몰리고 있습니다.
집을 잃은 지진 생존자들은 눈과 비를 동반한 영하권 날씨 속에서 자동차와 임시 텐트에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임시 거처에 머무는 이재민은 75만명을 넘겼습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많은 생존자가 지금 끔찍한 여건에서 야외에 머물고 있다"며 "수색·구조작업과 같은 속도로 지원에 나서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2차 재난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규모도 상당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날 튀르키예 강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을 40억 달러(약 5조원)로 추산하면서 "향후 진행 상황에 따라 금액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현장에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구출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속에 기적 같은 구조 소식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전 세계 56개국에서 파견된 6천479명에 달하는 해외 구호대도 현지에서 구조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기를 바라며 또한 형제국의 어려움을 도울 수 있는 도움의 손길 되어야 하지 않을까!